아라키 마사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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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라키 마사히로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1995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2018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내야수로, 특히 2루수와 유격수 포지션을 소화하며 2007년에는 도루왕을 차지했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회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고, 2007년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8년 은퇴 후에는 주니치 드래건스 2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를 거쳐,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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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 마사히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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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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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2루수/내야 수비 주루 코치 |
출생일 | 1977년 9월 13일(만 46세) |
출생지 | 구마모토현 기쿠치군 |
타석 | 우타 |
투구 | 우투 |
프로 입단 년도 | 1995년 |
드래프트 순위 | 1순위 |
첫 출장 | 1997년 5월 31일 |
마지막 출장 | 2018년 10월 13일 (은퇴 경기) |
선수 경력 | |
선수 | 주니치 드래건스 (1996년 ~ 2018년) |
지도자 경력 | |
코치 | 주니치 드래건스 (2018년, 2019년 ~ 2023년) |
국가대표 경력 | |
대표팀 | 일본 |
올림픽 | 2008년 |
기록 | |
타율 | .268 |
안타 | 2,043 |
홈런 | 34 |
타점 | 468 |
도루 | 378 |
데뷔 리그 | NPB |
데뷔일 | 1997년 5월 31일 |
데뷔 팀 | 주니치 드래건스 |
마지막 팀 | 주니치 드래건스 |
마지막 리그 | NPB |
마지막 날짜 | 2018년 10월 13일 |
통산 성적 연도 | 2018년 |
수상 | |
올스타 | 5회 (2005년, 2008년, 2009년, 2011년, 2012년) |
베스트 나인 | 3회 (2004년–2006년) |
미쓰이 골든 글러브 상 | 6회 (2004년–2009년) |
도루왕 | 1회 (2007년 센트럴 리그) |
올스타전 MVP | 1회 (2008년 2차전) |
일본 시리즈 우승 | 1회 (2007년) |
2. 선수 경력
아라키 마사히로는 1995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주니치 드래건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7][8] 초기에는 대주자나 수비 강화를 위한 교체 선수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2001년 시즌에는 중견수 포지션을 차지하며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2002년부터는 주전으로 기용되었지만 타격 부진으로 2할대 초반의 타율에 머물렀다.
이후 스위치 히터에 도전하며 외야와 2루수를 오가는 등 포지션이 불안정했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 부임 이후 2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 2004년 시즌에는 1번 타자로 출전해 39개의 도루와 9차례의 1경기 4안타 이상을 기록하며 활약했다.[67] 수비에서도 이바타 히로카즈와의 ‘키스톤 콤비’(2루수-유격수 콤비)를 이루며 오치아이 감독으로부터 “이바타와의 키스톤 콤비는 12개 구단에서 최고이며, 2루수가 혼자라면 메이저 리그까지 합해도 최고”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68] 그 결과, 첫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동시 수상했다.
2005년에는 1번 타자로 활약하며 개인 최고 기록인 42개의 도루를 달성했다. 2006년에는 부상으로 출전 경기 수는 줄었지만, 처음으로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7년과 2008년에는 타격 부진으로 출루율이 3할에 미치지 못했다. 2008년 6월 21일에는 개인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지만, 수비에서는 변함없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8년 시즌부터 이바타가 2루수로 전향하면서 아라키는 유격수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이바타의 포지션 변경이 늦어지고 아라키 자신도 개막 직전 다리 부상을 당하면서 연기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1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타격 부진으로 2번 타순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점차 회복하며 타율 2할 7푼, 득점권 타율 3할 4푼 3리를 기록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후쿠치 가즈키(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도루왕 경쟁을 벌였으나, 왼쪽 손목 부상으로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2010년에는 다시 이바타와 함께 포지션 변경에 도전했으나, 개막 전 왼쪽 앞다리 부상으로 1999년 이후 11년 만에 개막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4월 5일 1군에 복귀하여 유격수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했고, 이후 모든 경기에서 1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타율 2할 9푼 4리로 시즌을 마쳤지만, 수비에서는 20개의 실책을 기록하고 도루도 20개에 그치면서 7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 수상과 30도루 달성에는 실패했다.
2018년에는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를 겸임했지만,[31] 리그 규정상 코치 인원 제한으로 인해 3월 17일 코치직에서 해임되었다.[32] 7월 9일 DeNA전에서 2년 만의 홈런을 대타로 기록했다.[33] 9월 27일, 은퇴가 보도되었고,[34] 10월 6일 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35] 10월 13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은퇴 경기에서 "1번·2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 활약했다. 8회 노미 아쓰시에게서 우전 안타를 쳤고, 연장 11회 마지막 타석에서 라파엘 도리스에게 3루 땅볼로 물러나며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36]
(2009년 7월 16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2. 1.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1~2학년 무렵부터 지역 소프트볼 대회에 출전했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에는 포수로 뛰었던 것이 인상 깊었고,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는 투수로 출전하여 우승했다.[1]구마모토공업 시절에는 두 차례 봄의 선발 대회에 출전했다. 첫 번째 출전은 처음으로 고시엔 구장에 나가 흥분해서 필사적으로 했기 때문에 자세한 기억은 없다.[2] 두 번째 출전은 이전 대회의 설욕을 하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있었지만, 직전 연습 경기에서 귀루하는 도중 오른손 손등을 골절하여 1회전에는 출전할 수 없었다. 2회전에서는 깁스를 풀고 부상을 안고 출전했다. 숏을 잡아 송구하는 순간 부상 부위에 통증이 왔고, 악송구가 되었다. 타격 성적은 4타수 0안타였다.[3] 3학년 여름에는 현 대회 준결승에서 패했다.[4] 후지사키다이 구장에서 끝날지, 고시엔을 결정할지 하는 이미지였지만, 후지사키다이 구장이 개수 공사 중이어서 사용할 수 없어 야쓰시로 시민 구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규슈가쿠인고등학교와의 대결에서 이무라 후미아키 투수에게 막히고 모두 타격이 부진했다.[5]
고등학교 시절 2학년 선배로 다카나미 훈이치, 1학년 선배로 다나카 슈타, 동기로 마쓰모토 아키라, 다나카 마사유키가 있었다. 2루와 유격수를 맡았던 다나카 슈타는 엄할 때는 엄하지만 기본적으로 후배에게는 친절한 사람이었고, 자신은 선배에게 엄하게 대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후배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아라키는 후배에게는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6]
1995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당초 주니치는 후쿠루 쿄우스케를 1순위로 지명하고, 아라키는 드래프트 4순위로 지명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후쿠루에 이어 1순위(외れ1位)인 하라 슌스케까지 추첨에서 놓치자 감독 호시노 센이치는 "이제 마음대로 해라"라고 분개했고, 1순위(外れ外れ1位)에서 아라키가 지명되어 입단하게 되었다.[7][8] 담당 스카우트는 하야카와 미노루였다. 지명 전 인사차 방문했던 구단은 주니치와 긴테쓰, 요코하마,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총 4개 구단이었고, 본인은 지명 직후 "주니치가 지명해 줄 것이라는 예감은 있었지만 3순위 이하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9] 자신의 실력은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지명은 3순위나 4순위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압박감을 느끼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1순위 지명은 사양하고 싶다고 생각했다.[10] 당시 주니치의 간사이 지구 담당 스카우트였던 나카타 무네오에 의하면, 아라키는 3순위 또는 4순위로 지명을 검토했지만, 후쿠루와 하라의 추첨을 연달아 놓친 데다가 야쿠르트도 추첨을 두 번 놓쳤기 때문에 세 번째 추첨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호시노가 경합이 될 가능성이 없는 선수를 지명하도록 요청하여 아라키를 앞당겨 지명했다고 한다.[11]
2. 2.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1996년 ~ 2018년)
아라키 마사히로는 1995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후쿠도메 고스케(긴테쓰)와 하라 슌스케(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지명권 획득에 실패한 주니치 드래건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67]초기에는 대주자나 수비 강화를 위한 교체 선수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2001년 시즌에는 중견수 포지션을 차지하며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2002년부터는 주전으로 기용되었지만 타격 부진으로 2할대 초반의 타율에 머물렀다.
이후 스위치 히터에 도전하며 외야와 2루수를 오가는 등 포지션이 불안정했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 부임 이후 2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 2004년 시즌에는 1번 타자로 출전해 39개의 도루와 9차례의 1경기 4안타 이상을 기록하며 활약했다.[67] 수비에서도 이바타 히로카즈와의 ‘키스톤 콤비’(2루수-유격수 콤비)를 이루며 오치아이 감독으로부터 “이바타와의 키스톤 콤비는 12개 구단에서 최고이며, 2루수가 혼자라면 메이저 리그까지 합해도 최고”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68] 그 결과, 첫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동시 수상했다.
2005년에는 1번 타자로 활약하며 개인 최고 기록인 42개의 도루를 달성했다. 2006년에는 부상으로 출전 경기 수는 줄었지만, 처음으로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7년과 2008년에는 타격 부진으로 출루율이 3할에 미치지 못했다. 2008년 6월 21일에는 개인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지만, 수비에서는 변함없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8년 시즌부터 이바타가 2루수로 전향하면서 아라키는 유격수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이바타의 포지션 변경이 늦어지고 아라키 자신도 개막 직전 다리 부상을 당하면서 연기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1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타격 부진으로 2번 타순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점차 회복하며 타율 2할 7푼, 득점권 타율 3할 4푼 3리를 기록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후쿠치 가즈키(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도루왕 경쟁을 벌였으나, 왼쪽 손목 부상으로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2010년에는 다시 이바타와 함께 포지션 변경에 도전했으나, 개막 전 왼쪽 앞다리 부상으로 1999년 이후 11년 만에 개막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4월 5일 1군에 복귀하여 유격수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했고, 이후 모든 경기에서 1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타율 2할 9푼 4리로 시즌을 마쳤지만, 수비에서는 20개의 실책을 기록하고 도루도 20개에 그치면서 7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 수상과 30도루 달성에는 실패했다.
2018년에는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를 겸임했지만,[31] 리그 규정상 코치 인원 제한으로 인해 3월 17일 코치직에서 해임되었다.[32] 7월 9일 DeNA전에서 2년 만의 홈런을 대타로 기록했다.[33] 9월 27일, 은퇴가 보도되었고,[34] 10월 6일 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35] 10월 13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은퇴 경기에서 "1번·2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 활약했다. 8회 노미 아쓰시에게서 우전 안타를 쳤고, 연장 11회 마지막 타석에서 라파엘 도리스에게 3루 땅볼로 물러나며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36]
2. 3. 은퇴 이후
2018년 10월 29일 주니치 드래건스의 2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취임했다.[38] 2019년 3월 1일, 은퇴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주니치와 육성 계약을 맺었다. 등록 상의 등번호는 207번이었다.[39] 3월 3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시범 경기에 "2번·지명 타자"로 선발 출전하여 1회 말 첫 타석에서 아리요시 유키를 상대로 3루 땅볼로 물러난 뒤, 선수 및 코칭 스태프와 악수를 나누고 교체되었다. 2루 수비로 나설 계획도 있었지만 "중요한 시기에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현역 시절 경험이 없던 지명 타자로 출전했다.[40] 등번호는 코치 계약 상의 88번이나 207번이 아닌, 현역 시절의 2번을 달았다. 은퇴 경기 후 3월 4일 자유 계약 공시되었다.
(2019년 3월 17일, 나고야 구장에서)
2019년 7월 14일 복통으로 후쿠오카현 내 병원에 입원, 맹장 게실 천공으로 진단받고 7월 19일 긴급 수술을 받았다.[41] 2020년부터는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활동했다.[42]
2023년 10월 4일 주니치에서 퇴단했다.[43] 11월, 에스콘필드 홋카이도에서 열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가을 캠프에 수비 강화를 목표로 한 신조 쓰요시 감독의 요청으로 임시 코치를 맡았다.[44]
2024년부터는 CBC 텔레비전, CBC 라디오, 일본 텔레비전의 야구 해설가[45], 주니치 스포츠의 야구 평론가[46]를 맡는다. 또한 CBC 텔레비전 제작의 J SPORTS STADIUM이나, CBC 텔레비전과 같은 계열사인 TBS TV 제작 위성 방송(TBS 채널·BS-TBS)에서도 주니치 원정 경기를 중심으로 출연한다.
2월 2일 아마추어 자격을 회복했고,[47] 4월 1일자로 아이치현의 중경대학 부속 중경고등학교 야구부 임시 코치에 취임했다.[48]
3. 플레이 스타일
아라키 마사히로는 빠른 발과 뛰어난 수비 능력을 겸비한 선수였다. 특히 이바타 히로카즈와의 '''아라이바 콤비'''는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으로부터 12개 구단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키스톤 콤비(2루수-유격수 콤비)였다.[68]
주루1995년 드래프트에서 주니치 드래건스에 1순위(낙첨 1순위)로 입단한[67] 아라키는 빠른 발을 이용한 주루 플레이에 강점을 보였다. 2004년에는 39도루,[67] 2005년에는 개인 최고 기록인 42도루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30도루 이상을 기록했다. 통산 300도루를 달성하기도 했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도루 개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타격프로 초기에는 우타자였으나, 1998년부터 양타에 도전했다.[67] 2001년에는 준주전급 선수로 타율 0.338을 기록하며 주목받았고, 2004년에는 1번 타자로 나서 39도루와 9차례의 1경기 4안타를 기록했다.[67] 2006년에는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후 성적이 하락하며 타격에서는 다소 기복 있는 모습을 보였다. 2008년에는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아라키 마사히로의 연도별 주요 타격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소속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도루 | 주요 기록 |
---|---|---|---|---|---|---|
2001년 | 주니치 | 0.338 | 0.384 | 0.438 | 13 | |
2002년 | 주니치 | 0.259 | 0.279 | 0.296 | 16 | |
2003년 | 주니치 | 0.237 | 0.283 | 0.314 | 15 | |
2004년 | 주니치 | 0.292 | 0.322 | 0.349 | 39 | 중부리그 도루 2위, 베스트 나인 |
2005년 | 주니치 | 0.291 | 0.332 | 0.345 | 42 | 중부리그 도루 2위 |
2006년 | 주니치 | 0.300 | 0.338 | 0.358 | 30 | 중부리그 도루 3위 |
2007년 | 주니치 | 0.263 | 0.296 | 0.302 | 31 | 중부리그 도루 1위 |
3. 1. 수비
이바타 히로카즈와 함께 수비에서 2루-유격수, 타순에서는 1번-2번을 담당했던 것에서 "'''아라이바 콤비'''"라고 불렸다.[49]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은 이바타와의 키스톤 콤비(2루수-유격수 콤비)는 12개 구단에서 최고이며, 2루수가 혼자라면 메이저 리그까지 합해도 최고라는 높은 평가를 했다.[68] 이바타와 함께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며 2루 수비 능력을 높게 평가받았다. 유격수에서 재전환된 2012년에는 땅볼 실책이나 팬블 등의 실책도 눈에 띄었지만,[50] 이 해에도 수비 이닝 1000이닝 이상의 2루수 중 양대 리그 3위의 UZR 6.8을 기록했다.[51] 프로 데뷔 초에는 외야수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후에도 현역 말년에 이르기까지 때때로(주로 다른 선수와의 수비 위치 조정 때문에) 외야수로도 출전했다.2004년에는 이바타 히로카즈를 대신해 드래곤즈 타순의 선두 타자로 나섰고, 이바타는 2번 타자로 내려가 빠른 1, 2번 타선을 형성했다. 수비율은 0.992를 기록했고,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5년 NPB 2루수 최다 총 찬스(913)와 보살(496) 기록을 세웠다. 2006년 실책은 12개로 개인 최다 기록을 경신했지만, 세 번째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일본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완벽한 수비를 선보였다.
레귤러 자리를 확보한 후 한때 송구 이프스에 시달렸고, 인터넷 상에서는 이프스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였다. 이에 대해 본인은 은퇴 후, 팀 동료였던 타이론 우즈의 수비 범위가 좁았던 점을 언급했다. 한때 이프스의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부상 탓으로 돌리기도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우즈라도 잡을 수 있는 송구, 부상의 영향을 받기 어려운 투구 방법을 연구하여 현재(2021년 시점)에서는 "내가 이프스에 걸린 것은 우즈 때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58][59]
3. 2. 주루
1995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후쿠도메 고스케(긴테쓰)와 하라 슌스케(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지명권 획득 추첨에 실패한 주니치 드래건스로부터 1순위 지명(낙첨 1순위)을 받아 입단했다.[67]대주자나 수비 강화를 위해 기용되는 시기가 계속된 후, 2001년 시즌에는 중견수 포지션을 차지해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3할 대 타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2002년부터는 주전으로 기용되었지만 타격 부진으로 2할대 초반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스위치 히터에 도전하며 외야와 2루수를 오가는 등 포지션이 불안정했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 취임 후 2루수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2004년 시즌에는 공격에서 선두 타자(1번 타자)로 출전해 39도루와 9차례의 1경기 4안타 이상을 기록했다.[67] 수비에서도 이바타 히로카즈와의 ‘키스톤 콤비’(2루수-유격수 콤비)를 이뤄 오치아이 감독으로부터 “이바타와의 키스톤 콤비는 12개 구단 최고이며, 2루수가 혼자라면 메이저 리그까지 합해도 최고”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68]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2005년에는 1번 타자로 활약하며 개인 최고 기록인 42도루를 달성했고, 2006년에는 부상 여파로 출전 경기 수는 줄었지만 처음으로 3할 대 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7년과 2008년에는 성적이 부진하며 출루율도 3할에 미치지 못했다. 2008년 6월 21일 경기에서 역대 250번째 개인 통산 1000안타(1075경기째)를 달성했고, 매년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며 수비에서는 변함없이 안정적이었다.
그 해 시즌부터 이바타가 2루수로 전향함에 따라 아라키는 유격수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이바타의 포지션 변경이 눈 질병 때문에 늦어졌고 아라키 자신도 개막 직전 다리 부상으로 연기되었다. 시즌 초반 1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타격 컨디션 난조로 2번 타순으로 변경되었다. 2번 기용 후 서서히 회복하며 특유의 끈질긴 타격을 되찾았다. 타율 2할 7푼, 득점권 타율 3할 4푼 3리를 기록하며 결정적인 상황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후쿠치 가즈키(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도루왕 경쟁 중 왼쪽 손목 부상으로 결장하며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다시 이바타와 포지션 변경에 도전했으나 시즌 개막 전 왼쪽 앞다리 부상으로 1999년 이후 11년 만에 개막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4월 5일 1군 복귀 후 유격수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 모든 경기에서 1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타율 2할 9푼 4리로 시즌을 마쳤지만, 수비에서 20차례 실책, 도루 20개에 그치며 7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 수상과 30도루 달성에 실패했다.
시즌 중반 결장 경기가 있었지만 시즌 내내 1번 타자로 활약, 타율 2할 6푼 3리는 팀내 규정 타석 선수 중 최고 성적이었다. 300도루를 달성했지만 전체 도루는 18개로 전년보다 감소했다.
그 해에는 원래 수비 위치인 2루수로 복귀했고, 이바타도 유격수로 돌아왔다. 7월 10일 한신전에서 왼쪽 허벅지 뒷부분 부상으로 경기 도중 교체, 정밀검사 결과 근육 파열로 판명되어 등록 말소되었다. 올스타전에는 감독 추천으로 출전했다.
2013년 시즌 내내 부진하며 주전에서 제외되는 경기에서도 활약하지 못해 주전 정착 이후 최저 성적으로 마감했다. 1995년 데뷔 이후 12년 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하지 못했다.
2014년 인터리그에서 사구로 인한 골절로 약 한 달 반 정도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주로 2번 타자로 나서 2년 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9월 16일에는 다카기 모리미치에 이어 구단 사상 두 번째로 통산 350도루를 달성했다.
3. 3. 타격
2001년 시즌에는 중견수 포지션을 차지해 규정 타석에는 채우지 못했지만 3할 대 타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2002년부터는 주전으로 기용되었지만 타격면에서는 침체되어 타율이 2할대 전반에 머물렀다. 이후 스위치 히터에 도전하며 외야와 2루수를 오갔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 취임 후 2루수로 완전히 변환되었다. 2004년 시즌에는 공격에서 선두 타자(1번 타자)로 출전해 39개의 도루와 9차례의 1경기 4안타 이상을 기록했다.[67]2005년에는 1번 타자로 활약하며 개인 최고 성적인 42개의 도루를 달성했고, 2006년에는 부상 영향으로 출전 경기 수는 줄었지만 처음으로 3할 대 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7년과 2008년에는 성적이 침체되면서 출루율도 3할대에 미치지 못하는 등 타격 부진이 계속되었다. 2008년 6월 21일 경기에서 역대 250번째 개인 통산 1000안타(1075경기째)를 달성했다.
시즌 초반에는 1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아 2번 타순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2번으로 기용된 후 서서히 회복하면서 특유의 끈질긴 타격이 돌아왔다. 타율 2할 7푼, 득점권 타율 3할 4푼 3리를 기록하며 결정적인 상황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시즌 복귀 후 모든 경기에서 1번 타자로 선발 출전하여 타격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타율 2할 9푼 4리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 중반 결장 경기가 있었지만, 시즌 내내 1번 타자로 활약하며 팀내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 최고 타율인 2할 6푼 3리를 기록했다.
2013년 시즌에는 별다른 소득 없이 주전에서 제외되는 경기가 많았고, 주전 이후 최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1995년 데뷔 이후 12년 만에 규정 타석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2014년 인터리그에서 사구에 의한 골절로 약 한 달 반 정도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주로 2번 타자로 나서며 2년 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9월 16일에는 다카기 모리미치에 이어 구단 사상 두 번째로 통산 350도루를 달성했다.
아라키는 2001년 준주전급 선수가 되어 타율 0.338, 출루율 0.384, 장타율 0.438을 기록했고, 13개의 도루를 성공했다(9번 실패). 2002년 다쓰나미 가즈요시가 3루수로 이동하면서 아라키는 2루수를 맡아 타율 0.259, 출루율 0.279, 장타율 0.296을 기록했고, 20번의 도루 시도 중 16개를 성공했다. 2003년에는 타율 0.237, 출루율 0.283, 장타율 0.314를 기록했고, 24번의 도루 시도 중 15개를 성공했다.
2004년에는 타율 0.292, 출루율 0.322, 장타율 0.349를 기록하며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48번의 도루 시도 중 39개를 성공시키고 93득점을 올렸다. 이바타 히로카즈를 대신해 드래곤즈 타순의 선두 타자로 나섰고, 이바타는 2번 타자로 내려가 빠른 1, 2번 타선을 형성했다. 도루 부문에서는 아카호시 노리히로에 이어 중부리그 2위, 안타 부문에서는 176개로 니시 도시히사와 공동 3위를 기록했다. 그 해 아라키와 그렉 라로카는 중부리그 2루수 부문 베스트나인을 공동 수상했는데, 이는 NPB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4년 일본시리즈에서는 타율 0.267, 출루율 0.333, 장타율 0.433을 기록했지만, 주니치는 7경기 끝에 패했다.
2005년 아라키의 타격 성적은 타율 0.291, 출루율 0.332, 장타율 0.345였다. 88득점을 올리고 53번 시도해 42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중부리그 타석 기록(623타석)을 경신했고, 안타 부문에서는 181개로 이바타와 공동 5위, 득점 부문에서는 88점으로 9위, 도루 부문에서는 아카호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06년 아라키는 타율 0.300, 출루율 0.338, 장타율 0.358을 기록했고, 37번 시도해 30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리그 타율 10위, 도루 3위(아오키 노리치카, 아카호시에 이어)를 기록했다. 2006년 일본시리즈에서는 18타수 2안타, 볼넷 2개, 도루 1개로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2007년 아라키는 타율 0.263, 출루율 0.296, 장타율 0.302를 기록했고, 37번 시도해 31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타순이 2번으로 바뀌었고, 병살 파트너인 이바타와 타순이 바뀌었다. 중부리그 도루 1위, 희생타 30개로 2위를 기록했다. 2007년 일본시리즈에서는 5경기에서 타율 0.350, 출루율 0.350, 장타율 0.381을 기록하고 4개의 도루와 5득점을 올리며 주니치가 53년 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8경기에서 타율 0.263, 출루율 0.364, 장타율 0.421을 기록했고 2개의 도루와 5득점을 올렸으며, 일본의 주전 2루수로 활약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라키는 1회말 브렛 앤더슨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쳐 일본이 앞서나갔지만, 미국이 8-4로 역전하며 일본은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프로 데뷔 초에는 우타자였지만, 입단 3년째인 1998년부터 양타에 도전했다. 2001년에 다시 우타자로 돌아왔지만, 2003년까지는 양타자로 등록되어 있었다. 2009년 춘계 캠프에서는 당시 겸임 타격 코치였던 나카니시 카즈요시의 제안으로 다시 양타자 전향을 목표로 했던 적도 있었다.
1경기 3안타 이상의 멀티히트가 많았고, 2004년에는 1경기 4안타를 9번 기록하며 일본 신기록을 세웠다.
4. 인물
주니치 드래건스 팀 내 애칭은 "'''트라'''"이다.[60]
주니치 입단 당시, 하야카와 스카우트는 아라키에게 보도진에 둘러싸였을 때 "구단에서는 좀 더 준다고 했지만, 저는 그런 선수가 아니니까 6000만 엔으로 좋습니다. 입단 후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아라키는 그대로 말했다. 하야카와는 "요즘 세상에 이렇게 깨끗한 생각을 가진 녀석이 있다니, 정말 칭찬받았다. 글쎄, 그것이 목표였지만 말이야"라며, "지금도 아라키는 말합니다. 그건 정말 대단했죠, 제가 호감도를 얻은 것은 그 작전 덕분이라고 말이죠"라고 밝혔다.[61]
춤추는 대수사선의 팬으로, DVD를 전부 소장하고 있다. 또한, 춤추는 대수사선 시리즈에 출연한 야나기바 토시로와 친분이 두텁다. 2008년 1월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야구 이벤트 대기실에서, 평소 야나기바의 팬이었던 아라키가 글러브를 선물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62][63] 2010년 7월 3일, 야나기바의 고향 아키타의 아키타 현립 야구장에서 열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대 주니치 드래건스 10차전에서 야나기바가 시구를 맡았을 때, 아라키가 타석에 섰다. 이날은 춤추는 대수사선 THE MOVIE 3 녀석들을 해방하라! 개봉일이기도 했고, 야나기바는 도쿄에서의 첫날 무대 인사에서 직접 경기장으로 달려왔다.
2012년 개막전부터 야나기바가 1980년대에 소속되어 있던 유닛 "잇세이후비 세피아"의 '전략, 길 위에서'를 타석 등장곡으로 변경했다.
시즌 오프에도 강연회나 토크쇼에 자주 참가하여 팬 서비스에도 힘쓰고 있다.
2011년까지 감독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쓰를 존경하고 있으며, "감독이 무리라고 말하면 언제든 유니폼을 벗을 생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오치아이는 "(아라키는) 예민하고 쉽게 흥분한다. 볼을 스트라이크라고 하면 그날은 더 이상 전부 칠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64]
프로 입단 후 첫 식사와 은퇴 경기 직후 식사를 각각 주니치 팬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한 나고야시의 중화요리점 "중국 요리 피카이치"에서 했다고 한다.[65]
5. 수상 및 타이틀 경력
골든 글러브상을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년 연속 수상했고,[68] 베스트 나인에 2004년, 2005년, 2006년에 선정되었다.[67] 2004년에는 이바타 히로카즈와 함께 2루수 부문 베스트 나인을 공동 수상했는데, 이는 NPB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98년과 2005년에는 JA 전농 Go·Go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스피드업상도 받았다. 2007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우수 선수상을 받았으며, 2008년 올스타전에서는 MVP로 선정되었다.
2007년에는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7년에는 기쿠요정 주민 명예상을 받았고, 2018년에는 센트럴리그 연맹 특별 표창(공로상)을 수상했다.
5. 1. 타이틀
- 도루왕: 1회 (2007년)
5. 2. 수상
연도 | 수상 내용 |
---|---|
1998년 | JA 전농 Go·Go상 (호수비상) |
2004년 | 베스트 나인 |
2005년 | 베스트 나인 |
2006년 | 베스트 나인 |
2004년 ~ 2009년 | 골든 글러브상 (6회) |
2005년 | JA 전농 Go·Go상 (호주루상), 스피드업상 |
2007년 |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
2008년 | 올스타전 MVP |
2017년 | 기쿠요정 주민 명예상 |
2018년 | 센트럴리그 연맹 특별 표창 (공로상) |
6. 개인 기록
아라키는 2004년에 타율 0.292, 출루율 0.322, 장타율 0.349를 기록하며 눈에 띄는 향상을 보였다. 48번의 도루 시도 중 39개를 성공시켰고, 93득점을 올렸다. 이바타 히로카즈를 대신해 드래곤즈 타순의 선두 타자로 나섰고, 이바타는 2번 타자로 내려갔다. 수비율은 0.992를 기록했고, 첫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도루 부문에서는 아카호시 노리히로에 이어 중부리그 2위를 차지했고, 안타 부문에서는 176개로 니시 도시히사와 공동 3위를 기록했다. 첫 올스타에도 선정되었다. 그 해 아라키와 그렉 라로카는 중부리그 2루수 부문 베스트나인을 공동 수상했는데, 이는 NPB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67] 2004년 일본시리즈에서는 타율 0.267, 출루율 0.333, 장타율 0.433을 기록했지만, 주니치는 7경기 끝에 패했다.
2005년 아라키의 타격 성적은 타율 0.291, 출루율 0.332, 장타율 0.345였다. 88득점을 올리고 53번 시도해 42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중부리그 타석 기록(623타석)을 경신했고, 안타 부문에서는 181개로 이바타와 공동 5위, 득점 부문에서는 88점으로 9위, 도루 부문에서는 아카호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두 번째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베스트나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또한 NPB 2루수 최다 총 찬스(913)와 보살(496) 기록을 세웠다. 두 번째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2006년에는 타율 0.300, 출루율 0.338, 장타율 0.358을 기록했고, 37번 시도해 30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리그 타율 10위, 도루 3위(아오키 노리치카, 아카호시에 이어)를 기록했다. 다시 한번 올스타와 베스트나인에 선정되었다. 실책은 12개로 개인 최다 기록을 경신했지만, 세 번째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2006년 일본시리즈에서는 18타수 2안타에 볼넷 2개, 도루 1개의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2007년에는 타율 0.263, 출루율 0.296, 장타율 0.302를 기록했고, 37번 시도해 31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타순이 2번으로 바뀌었고, 병살 파트너인 이바타와 타순이 바뀌었다. 중부리그 도루 1위, 희생타 30개로 2위를 기록했다. 2007년 일본시리즈에서는 5경기에서 타율 0.350, 출루율 0.350, 장타율 0.381을 기록하고 4개의 도루와 5득점을 올리며 주니치가 53년 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아라키는 2007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대주자로 출전해 3경기에서 2득점을 올렸고 타석에 들어서거나 수비를 하거나 도루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2008년 NPB 올스타전 2차전에서 아라키는 4타수 3안타 3타점을 기록하며 중부리그의 승리를 이끌고 MVP를 수상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8경기에서 타율 0.263, 출루율 0.364, 장타율 0.421을 기록했고 2개의 도루와 5득점을 올렸으며, 일본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완벽한 수비를 선보였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지휘 아래 5개의 희생번트를 기록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라키는 1회말 브렛 앤더슨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쳐 일본이 앞서나갔지만, 미국이 8-4로 역전하며 일본은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예선 라운드 도루 부문에서는 지오르비스 두베르겔, 김현수, 니시오카 쓰요시, 에두아르도 파레트, 이종욱, 쑨링펑과 함께 공동 1위를 기록했다.
6. 1. 첫 기록
- 첫 출장: 1997년 5월 31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9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7회말에 유격수로서 출장
- 첫 선발 출장: 1997년 6월 1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0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8번·유격수로서 선발 출장
- 첫 안타: 1997년 6월 11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0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5회초에 다카하시 겐으로부터 우전 안타
- 첫 도루: 1997년 7월 11일, 대 한신 타이거스 14차전(나고야 돔), 7회말에 2루 안착(투수: 기다 마사오, 포수: 야나기사와 유이치)
- 첫 타점: 1997년 8월 8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9차전(도쿄 돔), 9회초에 기다 마사오로부터 우전 적시타
- 첫 희생타: 1997년 8월 9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0차전(도쿄 돔), 1회초에 오카지마 히데키로부터
- 첫 홈런: 2001년 6월 5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0차전(도쿄 돔), 3회초에 대럴 메이로부터 좌월 선제 2점 홈런
6. 2. 기록 달성 경력
연도 | 기록 | 내용 | 비고 |
---|---|---|---|
1997년 | 첫 출장 | 5월 31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 9차전 (지바 마린 스타디움), 7회말 유격수로 출장 | |
1997년 | 첫 선발 출장 | 6월 1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 10차전 (지바 마린 스타디움), 8번 유격수로 선발 출장 | |
1997년 | 첫 안타 | 6월 1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 10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5회초 다카하시 켄으로부터 우전 안타 | |
1997년 | 첫 도루 | 6월 2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14차전 (나고야 돔), 7회말 2루 도루 (투수: 키타 유오, 포수: 야나가사와 유이치) | |
1997년 | 첫 타점 | 8월 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19차전 (도쿄 돔), 9회초 키타 유오로부터 우전 적시타 | |
1997년 | 첫 희생번트 | 8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20차전 (도쿄 돔), 1회초 오카지마 히데키로부터 | |
2001년 | 첫 홈런 | 6월 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10차전 (도쿄 돔), 3회초 다렐 메이로부터 좌월 선제 2점 홈런 | |
2004년 | 베스트 나인 | 2루수 부문, 그렉 라로카와 공동 수상[67] | NPB 역사상 최초의 베스트 나인 공동 수상 |
골든 글러브상 | 2루수 부문 | 첫 수상 | |
2005년 | 베스트 나인 | 2루수 부문 | 2년 연속 수상 |
골든 글러브상 | 2루수 부문 | 2년 연속 수상 | |
2005년 | 시즌 623타수 | 세・리그 기록 | |
2006년 | 베스트 나인 | 2루수 부문 | 3년 연속 수상 |
골든 글러브상 | 2루수 부문 | 3년 연속 수상 | |
2007년 | 통산 1000경기 출장 | 9월 2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22차전(도쿄 돔), 2번·2루수로서 선발 출장 | 역대 423번째 |
2007년 | 통산 200도루 | 9월 2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24차전(도쿄 돔), 2회초 2루 도루 (투수: 다카하시 히사노리, 포수: 아베 신노스케) | 역대 66번째 |
2008년 | 통산 1000안타 | 6월 21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3차전(나고야 돔), 6회말에 브라이언 시코스키로부터 우중간 3루타 | 역대 250번째 |
2009년 | 통산 250도루 | 7월 1일, 대 한신 타이거스 7차전(나고야 돔), 6회말 2루 도루 (투수: 후쿠하라 시노부, 포수: 시미즈 다카시) | 역대 40번째 |
2011년 | 통산 300도루 | 6월 28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7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1회초 2루 도루 (투수: 루이스 곤살레스, 포수: 다케야마 신고) | 역대 27번째 |
2011년 | 통산 1500경기 출장 | 8월 18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2차전(나고야 돔), 1번·2루수로서 선발 출장 | 역대 171번째 |
2011년 | 통산 1500안타 | 9월 11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2차전(나고야 돔), 8회말에 후지에 히토시로부터 좌전 안타 | 역대 111번째 |
2012년 | 통산 200희생타 | 9월 4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8차전(나고야 돔), 1회말에 노무라 유스케로부터 1루 앞 희생번트 | 역대 34번째 |
2014년 | 통산 350도루 | 9월 16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 21차전 (요코하마 스타디움), 4회초 2루 도루 (투수: 야마구치 슌, 포수: 쿠로하네 토시키) | 역대 17번째 |
2016년 | 통산 2000경기 출장 | 4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2차전 (나고야 돔), 2번 2루수로 선발 출장 | 역대 49번째 |
2017년 | 통산 2000안타 | 6월 3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 2차전(나고야 돔), 4회말에 미마 마나부로부터 우전 안타 | 역대 48번째 |
2016년 | 연속 타석 무안타 | 47 | 2021년 사토 테루아키가 경신할 때까지 요시자와 타케오와 함께 세・리그 야수 기록 |
- | 올스타전 출장 | 5회 |
6. 3. 기타
참조
[1]
Twitter
ドラゴンズスペシャル ドラ魂キング
https://twitter.com/[...]
2023-12-27
[2]
Twitter
ドラゴンズスペシャル ドラ魂キング
https://twitter.com/[...]
2024-01-2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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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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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2 荒木 雅博(あらき・まさひろ)
https://web.archive.[...]
2016-05-13
[5]
Twitter
ドラゴンズスペシャル ドラ魂キング
https://twitter.com/[...]
2024-02-0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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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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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荒木2000本安打 トラの巻(上)『走塁技術 大成の原点』
中日新聞社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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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二宮清純レポート 中日ドラゴンズ 荒木雅博 内野手34歳 「名手の誇り、職人の意地」
https://gendai.media[...]
201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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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中日1位は驚異の俊足内野手 熊本工・荒木 高校通算盗塁は100以上 『失敗した記憶ない』
中日新聞社
199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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ドラゴンズスペシャル ドラ魂キング
https://twit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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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적
星野と落合のドラフト戦略 元中日スカウト部長の回顧録
カンゼン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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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tter
ドラゴンズスペシャル ドラ魂キン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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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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ドラゴンズスペシャル ドラ魂キン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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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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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荒木、スイッチ打者への再挑戦 立浪兼任コーチ、軌道にホレ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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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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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木 ナゴヤドームで1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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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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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木来季プレーで晴らす!! 600万円増3600万円…怒りのサイ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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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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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木 “谷沢バット”で安打製造機襲名 1インチ長く グリップエンド太く 25グラム重たく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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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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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荒木雅博内野手「開幕戦はどの試合も緊張しますよ」/開幕戦 {{!}} 野球コラ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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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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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木 9回逆転満塁弾 総力竜 首位がっち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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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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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発らしくなってきた平井 今季最長5イニング2/3で4勝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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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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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ランスクイズ!! 荒木 二塁から突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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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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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せラッシュ! 荒木、山北、幕田が結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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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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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木 オープンスタンス打法 オフの間に固め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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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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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中日荒木「まさか止めたバットで」2000安打達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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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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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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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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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荒木、井端、黄金の二遊間コンバートお預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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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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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木 350盗塁に到達!史上17人目、現役選手最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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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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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荒木、セ最長タイ無安打から1カ月ぶり打&1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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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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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ロ野球)荒木 2000安打達成 史上48人目、中日一筋22年目 バット短くコツコツ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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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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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荒木が2000安打達成 史上48人目 恩師星野氏の祝福に感極ま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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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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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が来季スタッフ発表…荒木、岩瀬がコーチ兼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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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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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岩瀬と荒木、コーチ職解かれる…NPB登録のみ「ベンチ8人枠」影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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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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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荒木が今季初本塁打 2年ぶりの一発は貴重な代打勝ち越し2ラ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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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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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 投打の顔が引退へ 岩瀬「競ったところで投げてない」荒木は出場激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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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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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木雅博選手引退のお知ら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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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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引退中日荒木フル出場5の2、涙の20季連続盗塁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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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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引退の中日・荒木、阪神ファンの強烈なヤジも「今となってはいい思い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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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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来季コーチングスタッフのお知ら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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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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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度 育成選手登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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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荒木コーチ「邪魔したくない」引退試合、2番・DHでの出場のワケ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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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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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荒木コーチが盲腸憩室穿孔痛で緊急手術 14日に腹痛を訴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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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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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ーチングスタッフ決定のお知ら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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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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来季の契約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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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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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木雅博さん、日本ハム秋季キャンプで臨時コーチ 新庄監督「気付いたことをどんどん教え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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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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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木雅博氏、CBCテレビ・ラジオの解説に就任「不安が半分、ワクワクも半分といった不思議な気持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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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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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の黄金期支えた荒木雅博さんが中日スポーツ評論家に「スタンドから野球を見るのは中学生以来…楽し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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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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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中日・荒木雅博氏ら 大学生への指導資格回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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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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竜のレジェンド・荒木雅博さんが中京大中京高の臨時コーチに! 28年間の技術と知識を球児に伝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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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6
[49]
웹사이트
落合監督「アライバ」に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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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2
[50]
서적
野球太郎 No.004 プロ野球12球団選手名鑑
廣済堂出版
[51]
서적
プロ野球を統計学と客観分析で考える セイバーメトリクス・レポート2
水曜社
[52]
웹사이트
落合博満氏「でしょうね。あれだけやられれば」とニヤリ 関口宏「井端さんムカついてましたよ」に 侍監督にはエー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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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23-10-08
[53]
서적
プロ野球スカウティングレポート2008
アスペクトムック
[54]
서적
プロ野球スカウティングレポート2007
アスペクトムック
[55]
서적
プロ野球スカウティングレポート2009
アスペクトムック
[56]
서적
プロ野球スカウティングレポート2010
アスペクトムック
[57]
방송
2008년까지 타격 코치였던 우노 카츠가 2011년 4월 3일의 도카이 라디오에서의 해설에 있어서 발언
[58]
웹사이트
名手・荒木雅博がイップスの恐怖に引きずり込まれたウッズの守備範囲(1/4ページ)
https://sportiva.shu[...]
2021-05-13
[59]
웹사이트
名手・荒木雅博がイップスの恐怖に引きずり込まれたウッズの守備範囲(3/4ページ)
https://sportiva.shu[...]
2021-05-13
[60]
웹사이트
立浪和義コラム「トラ、2000安打おめでとう!」 {{!}} 野球コラム
https://column.sp.ba[...]
2017-06-19
[61]
웹사이트
ドラ1で福留を外し「もう誰でもええわ」 結果的に“大当たり”だった27年前の指名
https://full-count.j[...]
2022-11-10
[62]
웹사이트
【独占手記】柳葉敏郎 “弟分”中日・荒木の2000安打を祝福
https://web.archive.[...]
2017-06-06
[63]
웹사이트
荒木雅博を語る<4> 柳葉敏郎さん
https://web.archive.[...]
2017-06-08
[64]
웹사이트
落合「中日のタブー暴露」講演会を実況中継(2)「選手の性格で指導を変えた」
https://www.asagei.c[...]
2012-02-01
[65]
서적
東海の町中華
ぴあ
2018-12-30
[66]
웹사이트
中日の荒木選手、初の授与へ /熊本
https://mainichi.jp/[...]
2017-09-02
[67]
문서
지금까지의 기록은 1996년 당시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이치로가 기록한 8경기였다.
[68]
방송
《드래건스 HOT 스튜디오》
2009-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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